'삼성전자 메모리·시스템반도체의 반격이냐 SK하이닉스·TSMC 연합군의 수성이냐'
인공지능(AI) 확산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내년부터 양산될 HBM4부터는 시스템 반도체(로직) 기술에서 승패가 갈릴 전망이다. HBM4부터 HBM에 D램뿐만 아니라 로직, 즉 시스템 반도체가 탑재되기 때문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시스템LSI 사업 인력 일부를 메모리 쪽으로 이동시켰다. 이는 HBM4를 개발하기 위한 것으로 파악됐다. HBM4의 경쟁력 기반인 '베이스 다이(Die)' 설계 역량 강화가 목적이다.
베이스 다이는 HBM 패키지 내 최하단에 탑재되는 칩이다. HBM은 D램을 수직으로 쌓아 올린 메모리로, 베이스 다이가 그래픽처리장치(GPU)와 HBM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삼성전자가 HBM4 개발을 위해 시스템LSI 인력을 배치한 것은 베이스 다이의 기능이 달라져서다. 지금까지는 입출력(IO) 신호를 다루는 '통로' 역할을 한 반면에 HBM4에서는 로직 기능이 들어간다. 디지털 신호를 처리하는 시스템 반도체의 일종이 베이스 다이에 탑재되는 것이다. AI로 급증하는 데이터를 더욱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서다.
이에 HBM4에서는 생산 공정도 바뀐다. HBM3E까지는 베이스 다이를 D램 다이와 같은 10나노미터대 메모리 공정에서 만들었다. 그러나 HBM4는 베이스 다이 내 공간 확보와 전력 효율, 성능 향상을 위해 5㎚ 이하 로직 공정이 검토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10㎚ 미만의 초미세 공정에서 경험을 쌓은 시스템LSI 인력을 투입한 이유다.
이 사안에 밝은 업계 관계자는 “HBM에서 로직 기술이 필요해져 삼성 시스템LSI 인력들이 메모리로 이동한 것으로 안다”며 “'본진이 무너지면 죽는다'는 판단 하에 HBM4에 승부를 건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 SK하이닉스와 TSMC 간 HBM4 관련 전략적 제휴도 이같은 배경에서 이뤄졌다. SK하이닉스는 5㎚ 공정 경험이 없는 반면 TSMC는 엔비디아, 퀄컴, 애플 등이 설계한 초미세 반도체들을 성공적으로 양산한 바 있다. SK하이닉스는 이에 HBM4 베이스 다이의 제조를 TSMC에 맡기게 된 것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시스템LSI 인력들이 3㎚, 5㎚와 같은 최선단 공정에서 시스템 반도체를 설계해왔기 때문에 HBM4에서 메모리 인력과 시너지 및 기술 경쟁력을 배가할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초미세 공정 제조(파운드리)에 가장 앞선 TSMC와 HBM 시장을 선점한 SK하이닉스가 손잡은 만큼 삼성의 추격이 간단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HBM4는 메모리·시스템 반도체·파운드리를 모두 아우르는 삼성의 종합 반도체 역량 대 SK하이닉스-TSMC 연합군 대결 구도가 되고 있다. 만약 삼성이 베이스 다이 설계 및 제조에서 밀리게 되면 HBM4를 만들 때 TSMC에 베이스 다이를 위탁생산해야 하는 상황을 맡게 될 수 있다.
김정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HBM은 갈수록 반도체 설계자산(IP), 설계 역량, 파운드리 공정이 중요해지고 있다”면서 “삼성전자가 종합 반도체 업체로서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TSMC의 전략적 협력사로 시장 경쟁이 팽팽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