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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2기출범]韓 전자·車, 멕시코 추가관세 촉각…中 규제 반사이익 기대도
https://www.etnews.com/20250120000278
2025-01-21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운 트럼프 2기 출범과 함께 한국 전자·자동차 기업들은 추후 진행될 글로벌 관세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은 이미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관세, 중국 상품에는 60% 고율 관세에 추가 10%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고, 상대국에선 보복관세 얘기가 나오면서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국내 전자·자동차 업계, 위기와 기회 '동시에'

트럼프 신정부가 예고한 멕시코 생산품에 대한 추가 관세는 국내 전자·자동차 기업에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축소·폐지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 정책 변화는 GM·포드 등 전기차 전환을 추진해온 미국 내연기관차 제조사에도 치명타다.

현대차그룹은 멕시코에 완성차와 부품 생산공장을 보유했다.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전기차 전용공장인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중심으로 현지 생산과 고용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에는 트럼프 당선인 취임식에 100만달러를 기부하는 등 현지 정부와의 관계 강화도 꾀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는 트럼프 당선인의 20% 보편관세 공약이 현실화되면 현대·기아차 영업이익(EBITDA)이 최대 19% 감소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울프리서치는 25% 관세 부과 시 미국 수입차 평균 가격이 3000달러(약 418만원) 오를 수 있다고 봤다.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멕시코에서 대형 생활가전과 TV를 생산하는 삼성전자·LG전자도 취임 직후 나올 관세 정책에 주목하고 있다. 멕시코 공장이 북미와 중남미 지역을 포괄하는 핵심 거점인 만큼 관세 부과에 따른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처지다. 실제 관세가 부과된다면 일부 생산라인을 미국 현지로 옮기는 추가 투자가 불가피하다.

전자 업계 한 관계자는 “생산라인 이동은 수 백억원에서 수 천억원 추가 비용 지출을 수반할 수밖에 없어 큰 부담”이라면서 “소비자에게 관세 인상분을 전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반면, 중국 고율 관세부과에 따른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월마트 등 현지 대형 유통사가 판매하는 초저가 TV의 경우 대부분 중국에서 조달하는 만큼 타격이 불가피하다. 미국 기업의 사업 위축이 예상되지만, 한국 등 다른 국가 TV 제조사에게는 가성비 높은 제품으로 빠르게 시장을 재편할 기회가 될 수 있다.

국내 중소·중견 가전사는 중국 압박에 따른 현지 판매 확대 효과를 조심스럽게 기대했다. 브랜드와 신뢰도 면에서 우월하지만 가격이 높았던 한국 제품이 중국산이 빠진 빈자리를 채울 수 있다는 기대감이 형성됐다.

미국에 진출한 코웨이와 청호나이스, 쿠쿠홈시스가 대표적이다. 쿠쿠홈시스의 경우 관세 부과에 대비해 현지 법인에서 재고를 상당량 비축하며 초기 시장 변화에 선제 대응하고 있다. 바디프랜드와 세라젬은 한국산 중심의 현지 헬스케어 시장 확산 효과를 기대했다.

국내 보일러 기업은 미국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낼 기회로 해석했다. 경동나비엔과 귀뚜라미보일러가 생산하는 보일러와 온수기는 생활필수품으로 분류돼 관세 부과나 수출규제 대상이 아니다. 신 행정부가 화석연료 중심 에너지 정책과 주택 공급 확대 등을 공언한 만큼 수출 확대 효과를 기대했다.

◇경제단체, 개별 네트워킹까지 전방위 대응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등 주요 경제단체는 주요 기업·정부와 함께 앞으로 전개될 미국의 빠른 정책 결정에 대응하기 위한 체계를 갖췄다. 정부 중심으로 자동차,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바이오, 조선 등 주요 업종 협회와 경제단체가 긴밀히 협업해 통상 전략 변화에 따른 대응책을 빠르게 모색하는 게 골자다.

특히 초유의 대통령 구속 사태 등 국내 정치 불안정으로 한국 경제에 대한 대외 신인도 악화가 우려되는 만큼 미국 정부와의 개별 협상과 사전 정보 탐색 과정에서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민간 외교채널을 최대한 확보하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미국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35차 한미재계회의 총회'에서 류진 한경협 회장-한미재계회의 위원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미국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35차 한미재계회의 총회'에서 류진 한경협 회장-한미재계회의 위원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평가받는 류진 한경협 회장은 미국 정·재계에 탄탄한 인맥을 두루 보유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양국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트럼프 신정부 출범에 따라 한국이 의존해온 수출주도형 경제모델을 새롭게 정립하고 글로벌 경제 연대 전략을 제기하는 등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개별 국가 차원에서 대응이 어려운 만큼 인접국가와 새로운 연대를 모색해 목소리를 키워 나가야 한다는 게 골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25 SK 전시관에서 개최한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25 SK 전시관에서 개최한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트럼프는 불확실성을 기반으로 한 산업 통상 정책을 펼치고 있다”며 “미국이 한국 산업계에 보편관세를 부과하면 판매가격을 올려서 가격 경쟁력이 흔들리거나 그 손해분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는 연쇄적으로 기업 이익 약화와 부실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며 “결론적으로 보편관세가 주는 메시지는 '공장을 미국에 옮겨라'라는 의미로 이에 대응할 전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